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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진실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

- 유장군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특수교육학과 석사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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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2.21 01:28   조회수 : 298,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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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청각장애 특수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인권유린에 관한 내용이다. 수년 동안 특수학교 교사들이 장애학생에게 일삼았던 비인권적 고문, 학대, 성폭력이 교직원 폭로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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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군 학생

 

 

현실은 영화보다 악질적이었고, 잔혹했다. ‘사학’이라는 특수성이 범죄사실을 은폐하고 침묵을 견고하게 만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설에서 당했던 고문과 폭행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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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가니> 포스터. Ⓒ 삼거리픽쳐스

 

그날의 기억


장애인 생활 시설에서 생활했던 2008년 11월, 한 시설 종사자로부터 ‘방과 후 교실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맞았다. 하얀 반창고로 돌돌 감은 쇠 파이프로 발바닥과 머리를 때렸다. 어느 날은 그 종사자가 밤 근무를 했다.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또 때리고 밤새 손들고 있게 했다.


공포영화에서만 나올법한 일들을 당하고 보니 무서웠다. 학교 일과가 끝나 시설로 돌아갈 때쯤이면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금도 비슷한 체형의 남성이 무섭다.


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빈번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종사자를 보고도 다른 종사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묵인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정확한 경위는 모르겠지만 몇 년 뒤, 그는 시설을 퇴사했다. 퇴사 전까지 반성과 사과는 없었다.


바뀌지 않는 현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장애인 인권유린과 폭행을 마주한다.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탈시설 권리 실현을 위한 경북지역 토론회’에서 김종한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2008년 이후 장애인 인권유린과 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북지역 장애인 거주 시설은 11곳이라고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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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지역 주요 장애인 시설 인권유린·비리 사건. Ⓒ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최근 경북 구미의 한 특수학교에서 장애학생이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원인에 관해 피해 학생 측과 학교 측의 주장은 엇갈리고 있다. 경찰이 사건을 조사 중이므로 확실한 결론을 섣불리 내릴 수는 없지만 정황 증거만으로 놓고 보면, 단순 사고로 귀결시키기에는 맹점이 많다.


첫째, 단순 사고가 혼수상태를 촉발했다는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학교 측의 주장대로 넘어져 다친 것이라면, 부딪힌 곳에만 외상이 있어야 한다. 온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폭행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둘째, 사건이 벌어진 곳은 지적장애 특수학교이다. 송준만 교수 등이 집필한 <지적 장애아 교육>에서는 ‘지적장애 학생의 운동능력이나 신체적 능력은 또래보다 비교적 큰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한다. 혼수상태에 처할 만큼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셋째, 목격한 학생의 진술을 학교가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둘둘 말이를 했는데, 갑자기 숨을 안 쉬어’라는 목격자 진술에 관해 학교 관계자는 ‘목격한 학생이 중증 장애가 있어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특수학교에 근무할 수 있을까? ‘장애’라는 이유로 자기가 직접 본 상황을 진술하는 것조차도 우리 사회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지적장애를 무시하는 한국 언론과 특수교육


대다수 언론은 사건이 촉발된 본질에 관해 다루지 않는다. 학교와 피해 학생의 대립 구도로 조장한다. 피해 학생이 중복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특수교육 현장에는 특수교사뿐만 아니라 보조 인력이 배치돼 있다. 그러나 이들은 특수교육과 장애학생의 행동 특성에 관한 전문성이 없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규칙> 제5조 ②항에 의하면 보조 인력 자격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부여하고 있다. 돌발행동에 관한 대처가 미숙할 수밖에 없다. 장애학생에게 효율적인 교육적 지원을 하기 위해 보조 인력 자격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 특수교육 영역에 있어서 중도·중복 장애에 관한 학문적 발전 역시 미흡하다. 명확한 법률적 정의와 기준, 이에 적합한 교육적 지원방안 등에 관한 연구와 논의가 부족한 실정이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이국종 교수는 대부분 의료 관계자가 불편해하는 분야인 ‘중증외상 의학’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특수교육 분야에서도 <중도·중복 장애>에 관해 진정성을 가지고 전공하려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늘 미안해하는 부모


자세한 내용은 수사를 통해 밝혀야 알겠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피해 학생과 부모를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 교직 경험은 없지만, 장애학생 부모가 자녀를 장애인으로 출생한 것에 얼마나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며 사는지 알고 있다. 죄 없는 부모가 피해 학생에게 ‘얼마나 애통하며 미안해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가슴 한구석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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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구미의 한 특수학교에서 지적장애 1급인 학생이 교실에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 KBS

 

힘든 여정 속 우리의 역할


실체적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한다.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피해자들에게는 힘든 여정이다. “이제, 그만할 때 되지 않았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굴복하며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두운 밤이 지나가면 아침이 온다. 힘든 여정을 버틴다면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피해자 호소를 진정성 있게 귀담아듣는 것뿐이다.

 

'모순 투성이지만, 꿈과 이상이 많은 뇌성마비 청년'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유장군(23) 학생은 대구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뇌성마비 등 중도 · 중복 장애에 관해 연구 중이다.

 

존엄하지만, 존엄하지 않은 장애인의 삶

유장군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특수교육학과 석사과정 기자 u_jjang@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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