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풍경 낚시’

['열정맨'과 떠나는 기행] ① 전라북도 진안 주천 생태공원·모래재 메타세쿼이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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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1.14 07:49   조회수 : 43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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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익숙해졌다. 여행은 물론 옆 사람과의 악수조차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열정맨'이 곳곳을 누비며 글과 사진으로 세상 이야기를 전달한다. (편집자 주)

 

11월 7일 23시 ‘정리’ 


잘까, 말까. 잘까, 말까. 잠들었다간 못 일어날 것 같고, 안 자기에는 너무 잠이 온다. 오전부터 반나절 동안 취재한 마을 행사가 기사로 완성되려면 한참 남았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하나라도 더 물어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면 꿈에 그리던 기자가 됐다는 내 모습에 취해 혼자 기사 쓰는 시간이 너무 고되다. 처음에 정한 기사 방향을 잃고 비틀거리기 일쑤다. 오늘 하루도 정리가 덜 됐는데 2시간 지나면 새로운 일정이 시작된다. 밖에 찬 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그냥 가지 말까. ‘지역의 제대로 된 언론인이 되겠다’는 초심에 비해 게을러지는 내 모습에 채찍질하다가 엎어져 잠이 드는 시각 23시, 지금 자면 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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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밤하늘 모습. © 임지윤

 

11월 8일 1시 30분 ‘출발’


충북 제천의 공설운동장 앞 45인승 버스가 ‘결국 왔냐’며 비웃듯 전조등을 켠다. 사람들이 분주하다. 버스를 채운 이들은 제천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이다. 오늘 하루 일용할 간식을 각자 전달받고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버스 맨 앞자리에는 쉴 때마다 기분 낼 소주도 몇 병 있다. 사진작가들과 함께 출발할 오늘의 촬영지는 ‘전북 진안’. 코로나 이후 처음 떠나는 타지 여행이다. 오길 잘했다. 모든 일상을 이미지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 아닌가. 앞으로 내 인스타그램에서 수백 개의 ‘좋아요’를 받을 ‘인생 샷’과 ‘풍경 샷’을 기대하며 출발한다. ‘이왕 왔으니 사진작가 옆에 꼭 붙어서 모든 비법을 뽑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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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제천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과 함께 전북 진안으로 출사한 날 먹은 아침 도시락. © 임지윤

 

6시 ‘기다림’


출발과 동시에 잠들었다.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조차 잠과 볼일을 맞바꿨다. 눈 떠보니 전북 진안의 주천 생태공원이다. 사진 좀 찍는 사람들은 꼭 찾는다는 이곳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오크와 반지 원정대가 다투는 결투지 ‘모르도르’를 연상시킨다. 새벽부터 전국에서 방한복을 입고 온 백여 명의 사진작가들로 가득 찼다. 자욱한 물안개와 무성한 풀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면 용담호 저편에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보인다. 그런데 사진작가들이 셔터를 안 누른다. 삼각대에 설치된 카메라 수십 대를 놔두고 ‘뷰 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 구도를 잡는 사진작가부터 가만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먼 산을 바라보는 사진작가까지 무슨 일인지 시간만 자꾸 흐른다. 어떤 작가들은 삼각대를 접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며 사진 찍는 다른 작가의 모습을 찍기도 한다. 물고기가 달아날까 침묵을 지키는 것처럼 고요한 가운데 풍경을 낚시한다.  그들은 무슨 풍경을 낚으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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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진안의 주천 생태공원에서 사진작가들이 반영이 잘 나타나도록 해 뜨길 기다리는 모습. © 임지윤

 

8시 ‘지금’


“지금이야, 지금.”


박영기(62)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천지부장이 외쳤다. 셔터 누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구름과 구름 사이로 5초 정도 햇살이 비치는 순간을 위해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린 것이다. “반영이 죽인다."는 한 사진작가의 감탄사가 들렸다. 경치도 아니고 반영? 무슨 말인지도, 두 시간 사이 뭐가 달라졌는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해가 구름 사이로 들어간 뒤 조용히 옆에 있는 사진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프로의 세계는 겸손함이 무기였던가. 서로 옆 작가가 사진을 더 잘 찍는다고 인터뷰를 미뤘다. 몇 번 부탁한 끝에 작가들의 비법을 초보 수준에서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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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철(62)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천지부 간사가 용담호 저편에 보이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촬영하고 있다. © 임지윤

 

첫 번째 비법은 ‘기다림과 포착’이다. 제천시 의회 공무원이자 1999년부터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풍경 위주로 사진을 찍는다는 ‘디포 클럽(제천 디지털 포토 클럽)’ 최명환 회장은 “보통 일출을 찍을 때 구름이 걷히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찍어야 해서 계속 기다린다”며 “대부분은 중간에 포기하다가 가는 경우가 있는데, 좋은 작품을 찍으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여기도 물안개가 많이 꼈는데, 노을이나 나무, 인물 등 피사체가 물에 비치는 ‘반영’을 찍으려면 안개가 걷히고 햇볕이 스며드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짜를 택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그는 “사진 찍으러 전국을 다니면 독서 못지않게 자신 또는 함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며 과거 동해안에서 갈매기 날갯짓 사이로 햇볕이 스며드는 순간을 포착한 게 자신이 찍은 최고의 사진이라 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디포 클럽’ 21회 사진 회원전이 전통시장 활성화 목적으로 제천시 내토 시장에서 18일까지 열리고 있으니 먹거리 즐길 겸 눈도 휴식을 가지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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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포 클럽’ 21회 사진 회원전이 전통시장 활성화 목적으로 제천시 내토 시장에서 18일까지 열리고 있다. © 김서윤

 

두 번째 방법은 ‘포인트 찾기’다. 사진작가들에게 ‘포인트’는 피사체를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구도를 말한다. 더불어 장소와 시간대를 미리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박충수(58)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천 부지부장은 일주일 전 사진협회 회원 두 명과 함께 답사도 한차례 다녀왔다. 포인트를 미리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일주일 만에 풍경이 이렇게 달라졌다”며 답사 때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중심으로 알록달록 단풍이 물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이 낙엽 진 지금 모습과 달랐다. 이처럼 우리 인생도 나이가 들며 모습은 변하지만, 각자가 가진 고유의 매력은 그대로 풍기지 않을까.


때로는 포인트 자리를 서로 욕심을 내다보면 자리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박성숙 ‘디포 클럽’ 회원은 “사진 촬영대회에서 괜찮은 포인트 자리를 잡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밀치고 욕해서 결국 가장 외곽 자리에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처럼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비추는지 ‘포인트’에 따라 전하는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인고의 시간을 즐기는 사진작가들로부터 기자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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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충수(58)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천 부지부장이 일주일 전 사진협회 회원 두 명과 함께 답사를 다녀오며 찍은 전북 진안의 주천 생태공원 풍경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임지윤

 

“어떤 유명한 사진작가가 사진작가들은 '천사'라고 표현했어요. 일반 사람들은 흔히 평범함 속 아름다움을 놓치고 지나치는데 사진작가들이 일상 관찰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세 번째 방법은 ‘관찰’이다. 카메라를 도구 삼아 생각과 느낌, 삶을 사진으로 표현한다는 김상덕(43) 사진작가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일상을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로 풍경을 담는 그는 “가끔 길을 걷다 돌아봤을 때 풍경이 말을 거는 것 같다”며 “한참 대상을 바라보고 마음이 움직이면 셔터를 누른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촬영지 묻자 그는 대답을 피했다. 사진 속 특정 장소가 알려지게 되면 그곳의 자연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누구나 카메라를 드는 순간부터 작가라며 촬영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남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이 찍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최근에 어떤 생각 하는지 내면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피사체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게 생긴다고 했다. 사진이나 예술에 관해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13년째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중인 그는 “오늘 어느 한 사진작가분이 연로하고 몸이 불편하신데도 지팡이를 짚고서 열정적으로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후배로서 존경심이 들었다”며 “더 열심히 다니며 생각과 느낌을 사진으로 반영해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겼다”고 말했다. 사진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다가 놓친 볼일이 급해진다. 참던 배 속이 끓는 화를 못 참고 나에게 성질낸다.


“지금이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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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덕(43) 사진작가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일상을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무명 사진작가가 활동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며 자신을 알리기 위해 직접 찍은 사진(오른쪽)을 마스크와 옷 등에 새겨 넣었다. © 임지윤

 

13시. ‘행복’


급한 볼일을 마친 뒤 편안하게 점심을 먹고 향한 다음 목적지는 진안 모래재 메타세쿼이아 길이었다. 주홍빛이 도로까지 물들인 이곳은 영화 <국가대표>, 드라마 <내 딸 서영이> 등 10여 편 넘는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된 장소다. 최근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0년 가을철 비대면 관광지 100선’에 들어가기도 했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주변에 보이는 연인의 속삭임까지 전해줬다. 가을을 누가 고독한 계절이라 했던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200km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다음에 꼭 연인과 함께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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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모래재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자전거를 타며 잠깐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섰던 임지윤 기자. ⓒ 김서윤

 

“임기자. 저기 자전거 타고 모델 좀 해줘요. 여자 모델 옆에 가서 다정하게 걸어오면 돼”


박영기 사진협회 제천지부장의 권유로 자전거에 올라탔다. 모델이라. 온갖 보정이 익숙해진 나에게 잡티까지 그대로 노출되는 고급 카메라 앞에 서라니. 그것도 처음 보는 분과 연인처럼 걷는다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 할 수 있어’를 되새겼다. 주차된 차의 창문에 비치는 자전거 탄 내 모습을 봤다. 머리를 손질했다. 이런. 옷이라도 더 신경 써서 입고 올걸. 카메라를 들이댈 때 손사래 치며 취재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갔다. 기자 못지않게 취재원에게도 인터뷰는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끼며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 섰다.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말 거는 시늉부터 함께 자전거를 끌고 걷는 장면까지 다양한 모습을 연출했다. 여성분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했다. 능숙한 연기와 붉은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모습이 배우 지망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린이집 교사였다. 다시 다짐한다. 다음에는 꼭 연인과 함께 이 길을 누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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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들이 진안 모래재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인물 사진을 찍는 중이다. © 임지윤

 

14시 30분, ‘휴식’


일정이 다 끝나고 제천으로 돌아가기 전 전주 한옥마을을 잠시 들렸다. 거리는 야외 스튜디오였다.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정말 모두가 사진작가였다. 한 바퀴 둘러본 뒤 버스 탑승지로 갔다.


“젊은 친구, 저기 버스 안에 있는 재산이 총 얼마나 될 것 같아?”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윤희철(62)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천지부 간사가 질문을 던졌다. 40명 가까이 왔고 카메라 한 대당 500만 원이라 잡으면 2억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당황했다.


“카메라에 각종 렌즈, 삼각대, 그 외에 보조 장비들 합치면 보통 한 사람당 최소 천만 원씩 들고 다니는 거지. 40명이라 해봐. 4억 훌쩍 넘어가는 거야.”


그렇다. 모두가 사진작가가 될 수 있지만 모든 사진이 작품으로 전시회에 걸리지 않는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지만, 그건 장인일 때나 하는 얘기다. 장인어른도 없는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괜찮은 카메라 얼른 사야 하니까. 그러니 지금의 휴식을 최대한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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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한옥마을 전경. © 임지윤

 

19시 ‘끝’


제천에 도착했다. 사진작가들과 떠난 풍경 낚시 여행이 끝났다. 집에 와 침대에 누우니 주말도 끝났다. 새로운 한 주가 흘렀다. 일주일 가까이 지난 이제야 이날의 이야기를 끝맺는다. 순간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는 사진과 같은 글을 쓰기에는 나는 아직 역부족이다. 포인트를 찾기 위한 답사라 생각하자. 인생은 실수와 실패의 반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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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천지부 등 제천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이 전북 진안군 일대에 합동 촬영회를 나갔다. © 임지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92938)에도 실립니다. <중부저널>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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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맨

안녕하세요. 충북 제천 지역 언론 '중부저널' 열정맨, 임지윤 기자입니다.

열정맨이 '중부저널'에서 쓴 뜨거운 기사,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풍경 낚시’'를 소개하려 합니다.

지난 8일 새벽부터 제천 사진작가들과 함께 다녀온 전북 진안 합동 촬영회를 담았습니다. 제가 느낀 점과 배운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는데요, 사진작가들은 무슨 풍경을 어떻게 낚시할까요? 그 비법과 그날의 하루가 궁금하시지 않으세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jbjn.kr/news/view.php?no=174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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