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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부칼럼]제천시는 미래를 여는 4번째 사과를 만들어야 한다
    [신윤균 칼럼리스트]현재 우리는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지나 제4의 물결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알파고, 사물인터넷 등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소리 없이 우리의 주변에 다가오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하여야 우리 제천시가 대처 할 수 있는가 능동적인 자세인가, 수동적인 자세인가가 향후 우리 제천시의 모습일 것이다.   현재 만족에 안주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실례로 일본 메이지 천황과 우리 조선 고종은 같은 나이이고 왕으로 등극한 년도도 아이러니 하게 같다. 일본 천황은 미국의 무력 앞에 굴복하여 개항을 하고 우리는 주자학적 매너리즘에 빠져 쇄국정책으로 일관 한 결과 한 • 일 양국의 현재 모습은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같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역사적 교훈에서와 같이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 제천시가 역동적으로 여러 산업단지를 유치하여 새로운 활력의 길을 모색하려고 많은 힘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이다. 산업화 개발 시대의 제천의 산업은 충북 북부 중심의 산업으로 시멘트, 각종 광산물, 교통의 요지로서 많은 발달을 하였으나 정부의 산업 정책의 변화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에 대한 극복으로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유명한 철학자 헤겔의 '세 개의 사과'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종교와 예술과 과학을 사과와 관련성 있는 이야기로 표현한 것이다. 사과는 현재 7500개의 품종이 있으며 년 간 생산량은 7천만 톤에 육박한다. 사과가 신들에 영역까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태고적부터 인류와 함께 한듯하다. 이렇게 인간에게 가장 널리 사랑받는 과일 중에서 사과 세 개가 세상을 바꾸었다.    첫 번째 사과는 에덴동산의 사과이다. 에덴동산의 지혜의 열매이며, 밀튼의 '실락원'에 나오는 이야기다. 성서에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서 지혜의 열매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지상낙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하면 선악과이지만 우리는 사과라고 흔히 알고 있다. 그 열매가 사과였다는 것을 보면 사과가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에덴동산의 사과 이야기는 ‘신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을 뜻이기도 하다.   두 번째 사과는 뉴턴의 사과이다. 뉴턴의 통찰은 처음 세상에 선을 보일 때부터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뉴턴의 코앞에서 사과가 떨어졌을 때 마침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다. 뉴턴은 과일이나 우리 인간은 모두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지는데 저 위성은 어떻게 창공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지구의 인력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만유인력설을 주장하여 과학사에 일대 전기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뉴턴역학은 예나 지금이나,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뉴턴으로부터 대자연의 코드를 읽게 된 인간은 드디어 환경을 개발하고 이용하게 된다. 진정 이것이 바로 자연을 지배하는 혁명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뉴턴이 명상을 하던 사과나무는 널리 알려지게 돼 18세기 말 울스토로프의 사과나무 중 특별한 한 그루에 ‘사과가 떨어진 나무’라는 표지가 붙었다. 1820년경 그 나무는 완전히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 나무로 의자를 만들었는데, 그 의자는 아직도 보존돼 있다.    세 번째 사과는 빌헬름 텔의 사과로서, 스위스는 한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지배를 받아 왔다. 이 무렵 스위스인들은 오스트리아에서 파견한 관리들의 압박정치에 매우 시달렸다. 활의 명수인 빌헬름 텔은 이에 항거하여 총독의 노여움을 샀다. 텔은 항명(抗命)에 대한 처벌로 자기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놓고 그것을 활로 쏴 떨어뜨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텔은 멋지게 사과를 쏴 떨어뜨렸지만, 만일 실패할 경우 게슬러를 쏘기 위해 몰래 준비했던 화살이 발각된다. 텔은 체포되어 성으로 끌려가다가 도망쳐 길가 숲에 잠복해 있다가 총독를 쏴 죽이고 스위스독립을 이끈다. 이는 억압과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J.C.F.실러의 희곡과 G.A.로시니의 오페라로 더한층 유명해졌다.   이상의 3개 사과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제천시는 미래를 여는 4번째 사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미래를 여는 4번째 사과는 요즘 각 분야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고(故)스티브 잡스의 애플로고로서 “왜 먹다만 사과일까?”, '애플사의 제품을 맛보면 다른 제품을 쓰지 못한다'는 의미로 이해가 된다.   참으로 너무도 자신감에 찬 스티브 잡스의 오만함이다. 한때는 사람들이 잡스의 사과가 그 4번째 사과라고 치켜세웠다. 그런데 왜 요즘에는 아이폰 보다 안드로이드를 많이 쓰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잡스의 사과는 인류를 변화시키는 4번째 사과로는 이미 아닌 듯 싶다. 이러한 네 번째의 사과를 우리제천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제천은 산업화시대에 자원을 개발하는 원산지로서 제천의 먹거리를 만들어 살아왔다. 이제는 먹어 버린 사과를 다시 재생을 하여 새로운 자원으로 사용 할 수 있는 네번 째 사과를 재생산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구의 자정능력을 넘어선 개발로 인한 환경 재앙에 대한 대안으로 자원 순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네 번째 사과로 자원순환과 재생을 한다면 새로운 사업으로 지구의 장래를 밝힐 수 있는 제천의 모습으로 멋진 신세계로 새롭게 탄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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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9
  • [외부칼럼]사실 속에서 새로운 안목을 가져야
    [신윤균 칼럼리스트]작금의 현실을 둘러보면 주변 환경이 광속도로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고도 성장기에는 앞만 보고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던지 가난을 극복하고 주변 다른 나라들과 같이 선진국 대열에 가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편안한 생활을 하면서 행복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참고 참고 인내의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인간 기본적 인권은 뒷전에 보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우리는 이제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서 뒤를 돌아보고 앞을 새롭게 설계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존재에 놓여 있다. 서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인간의 실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실존 즉,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면서 실존주의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선 단독자’라는 인간의 의미를 부여하고 마르틴 부버 라는 철학자는 만남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등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였으나 아직도 그에 대한 대답을 못 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성리학의 이념이 도덕의 주체로서 가장 근저에 생활 규범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지폐의 주인공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담 으로 유교적 관념에서 성군, 조선을 이끌어온 두 유명한 학자, 율곡의 모친으로 유교적 이념에서 훌륭한 인재로 주류를 이룬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반론을 재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이에 대한 우리의 반성적 모습이 필요로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유학의 주가 공자, 맹자, 주자로 이어지는 것이 유학을 모두라고 보는 것이다. 유학이라는 이념도 엄연히 춘추전국시대의 하나의 제자백가 사상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과 다른 사상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하여 사장(死藏)을 시키고 하나의 순혈적 생각을 가지고 마치 신라의 골품제도 같은 생각으로 사고의 주류를 이끌어 다른 사상은 근접도 못하게 하여 다른 사상적 교접이 없이 오직 하나만을 강조하는 사고의 고착성(Fixed)은 서양의 과학철학자인 칼 파퍼의 지적대로 열린사회의 적들이다. 사상을 유연성(Flexible)이 있어야 한다.   우리 역사책을 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란 이후에 사상적 주류를 이룬 것이 실학사상으로 이어진 것처럼 책이 기술되어있다. 실상은 이런 실학사상은 육당 최남선이 일본이 내선일체의 문화 식민지에서 식민사관에 대척하기 위해서 우리도 이러한 사상이 있었다고 발굴하여 시작한 것이다. 실학사상이 대두되던 시기에 실학사상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좌파적 성격이다. 주류의 성리학은 양란 이후 성리학적 매너리즘과 양반 사대부의 집권 정당성을 지지해주는 이념으로 이기론 이후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등을 가지고 대답 없는 메아리로 공리공론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에 반기를 든 잔반들, 몰락한 남인계열, 서얼들이 모여서 유학에 대한 실사구시, 이용후생, 경세치용이라는 학문적 기치를 들과 새로운 학문의 반성으로 성호 이익을 필두로 하여 다산 정약용까지 이어져 나갔다. 이에 개혁 군주인 영조, 정조 이후 반짝 대두 되었으나 이후 서인 세력들과 양반 사대부들의 반대에 부딪쳐 어느 한곳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교훈을 가져야 한다. 사실 속에서 새로운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로 동양 고전인 장자(莊子)의 양생주에 나오는 포정의 비유를 소개 하고자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포정(丁)이라는 솜씨 좋은 백정이 있었다. 어느 날 포정이 문혜군(文惠君, 기원전 371~335)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다. 그가 소에 손을 올리고 어깨로 받치며, 발로 밟고 무릎을 굽힐 적마다 칼질하는 소리가 싹싹 쓱쓱 울려 퍼져 음악적인 가락을 이루었다. 문혜군이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말하였다.       “오오, 훌륭하도다! 사람의 재주가 여기까지 미칠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면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느냐?”  그러자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로서 이는 손끝의 재주보다 뛰어난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손을 댈 수 없었으나, 3년이 지나자 어느새 소의 온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마음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만 남습니다.   그러면 천리(天理)를 따라 쇠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의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 기술의 미묘함은 아직 한 번도 칼질을 실수하여 살이나 뼈를 다친 적이 없습니다.   솜씨 좋은 소잡이가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소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제 칼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마치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9년이 되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군데, 뼈와 힘줄이 엉켜 있는 곳에 다다르면 그것이 어려운 일인 줄 알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하여 눈은 한 곳을 응시하고 칼질은 더디어지고 칼놀림이 몹시 미묘해집니다.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일이 끝나면, 칼을 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잠시 주저하다가 이내 흐뭇해져 칼을 닦아 넣어 둡니다.”  이 말을 들은 문혜군이 감동해서 말했다.   “훌륭하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 자연의 이치를 좇고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으려는 도가의 수련법)의 도를 터득했도다.”  포정해우(庖丁解牛)는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나오는 말로서, 기술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남을 비유할 때 쓴다.   이상의 고사에서 우리는 하나의 사실을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주어진 일에 대하여 단순하게 다람쥐 첵바퀴 돌 듯이 하면 아무런 변화를 못 느끼고 하나의 단세포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의 주어진 책무에 대하여 생각을 하고 원리를 깨우치는 것은 원리와 이치를 알면서 하면 세상사를 즐기면서 새로운 것을 창출 할 것이다. 이에 비하여 단순하게 주어진 책무만 했다고 하여 소신이 있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장자의 포정의 비유처럼 자신의 주어진 책무를 이해하고 원리를 알면서 책무를 수행하면 좀 더 좋은 사회로 이끌 것이다. 이런 창의적 사고는 멀리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주어진 자기 현실에서 수행을 하면서도 문제의식과 해결을 찾는다는 제천시민이 된다면 좀더 밝고 살기 좋은 제천을 건설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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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1
  • [외부칼럼]제천 시민에게 고함
    [신윤균 칼럼리스트]인류의 역사는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의 이야기처럼 도전과 응전의 시대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밀레니엄의 시작이라고 이상과 꿈을 갖고 시작을 하였으나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은 과거의 역사의 되풀이가 형태만 다르게 지속되고 있는 모습이다. 국운의 풍전등화에서 의병이라는 모습으로 의롭게 활동하면서 나라의 국난을 극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신 조상을 두고 이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높은 시민으로서 제천사람이라는 자존감이 높은 도시에 살아가고 있다. 이런 도시의 풍토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능동적인 자세로서 삶의 지혜를 모아서 슬기롭게 살아가는 가장 모범적인 도시로 탄생하여야 할 것이다. 모범적이고 생산적인 도시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한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는 없다. 통합과 융합, 소통이 필요한 시대에 소수의 엘리트적인 지식인이 이끄는 시대가 아닌 함께 어울리면서 융합과 통섭 및 소통이 필요로 한 자세가 중요시 되고 모두를 어울리며 살아가는 함께 할 수 있는 화이부동(和而不同)시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 변화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120년 전 제천은 일본 국권 침탈에 항거하던 항일의병 본향으로서 우리는 교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 국권 침탈에 대한 의리지학(義理之學)의 항거 정신과 더불어 우리를 둘러 싼 주변 정세의 파악도 함께 중요하다. 즉, 내 • 외부적인 변화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주안점을 둠과 동시에 역사적 교훈도 같이 있어야한다. 두 번의 실패는 없어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역사 속에 있었던 독일 철학자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내용을 통해 우리의 사표로 삼아보려고 한다. 그 내용을 간략히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프로이센은 1806년, 나폴레옹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했으나 나폴레옹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예나를 점령하고 그해 10월 14일에는 베를린에 입성했다. 1807년 6월14일, 프로이센의 빌헬름 3세는 프랑스에 굴복, 강화 조약을 맺었다. 프로이센은 이 조약에 의해 사실상 프랑스의 속국과 다름이 없게 되었다. 국민들의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은 자포자기했다. 국토는 분할되고 엄청난 전쟁 배상금이 부과되었다.   이런 국가위기 때 철학자 피히테는 프랑스군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낙망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피를 토하는 열변을 토했다. 그것이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우국 강연이었다. 1807년 12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3월까지 나폴레옹 군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베를린 학사원에서 매주 일요일에 한 번씩 열린 이 강연을 통해 피히테는 독일 재건의 길은 무엇보다도 국민정신의 진작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독일 국민의 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피히테는 패전 후 독일 국민에게 만연한 패배감·이기심·나태함을 지적하면서 국가 재건에 필요한 새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피히테의 열변에 감동한 국민들은 적극 호응했다. 프랑스의 속국처럼 바뀐 절망적 베를린 땅에서 1808년 피히테는 독일 국민의 각성을 요구하는 명연설을 남겼다. 그는 독일 패배의 근본적 원인이란 이기심이며, 그것은 새로운 국민 교육에 의해 타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민족의식이 깨어나야 독일 국민은 독립을 되찾고 세계사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참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교육받은 문화적 엘리트가 담당해야 할 몫을 특히 강조했다.   우리의 장래는 무엇을 보고 자라느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위에서 사례로 든 독일의 경우 이런 내용들이 수 십 년 후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가치관이 망가진 시대에, 이기심 과 물질주의로 병들어 가는 시대에 우리가 먼저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할 것은 아주 평범하고도 상식을 존중하는 도덕심이다. 이웃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르치는 자세이다.   바로 인간의 기본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도덕이 바로 서지 않아서 지불하는 거래비용이 얼마나 많은가. 도덕심 부족을 얘기할 때, 흔히 재벌 등 가진 자들의 경우가 문제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만 본 것이다. 사회 전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부정 • 부패 • 부조리 뿐 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도덕을 인식하지 못해서 나오는 문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다 도덕 수준이 낮아져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에 만연된 법 경시 풍조도 도덕 수준 저하와 관련이 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은 지켜야 한다. 광기가 우리 사회 곳곳에 판친다. 합리적 사고는 오간 데 없고, 자기주장에 매몰된 ‘내 생각’만 있다. 역사는 광기(狂氣)에 기대어 발전할 수 없다. 우리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생활자세의 도덕적 기본에 충실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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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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